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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교통 정기엽 대표의 삶

작성일 : 2018-04-29 21:12 수정일 : 2018-04-30 00:00 작성자 : 서정윤

 

 

사업가면서 유명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정기엽 씨

성남에서 버스운수업을 하며 어려운 이웃 돕는 일에 앞장

 

사랑하며 용서하고 더불어 살자.” 정 기엽 씨(67 진아 교통 대표)의 좌우명이다. 그의 좌우명처럼 정 씨는 모든 사람들과 어울려 항상 밝고 친절한 모습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정씨는 지난해 530일 국회도서관대강당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대상에서 우수 기업인으로 선정돼 상장과 상패를 받는 영광을 차지했다. 이날 행사장에서 상장을 받은 사람은 정씨 이외도 국회의원, 유명 연예인, 지자체 단체장 시의원 등 각계각층에서 선정된 50여명의 정 관계 인사들과 유명 인사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우수기업인으로 선정된 정 기엽 씨는 본업이 운수업을 하는 사업가 이지만 사진작가로 더 잘 알려진 인물. 정씨의 거주지는 인구 100만 도시인 경기도 성남시에 살고 있다. 그를 잘 아는 지역 사람들을 만나서 정씨를 물어보면 고향이 충청도 사람들은 그를 충청향우회 공동대표로 알고 있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그를 20여대의 버스를 갖고 있는 운수회사 사장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사업 다음으로 그가 가장 사랑하며 애착을 느끼는 직업은 사진작가. 사진작가래도 평범한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 작가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사진작가 군에 속해있다. 여러 번의 전시회를 통해 알려진 그의 작품은 이미 유명세를 탓기 때문이다.

지난 95년부터 운수업에 종사한 정씨는 항상 자신의 조그만 이익 보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일 하는 동료들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혹여 회사의 운영이 적자가 발생해도 손익을 떠나 자신의 버스가 시민들의 발이 되는 것에 더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다.

정씨의 본래 직업은 운수업. 하지만 그의 사진작가 이력이 더 길다. 정씨는 한때 운수업을 포기하려 한 적도 있다. 그것은 지난 2000년 초 부터 10여년간 지역의 불리한 여건으로 매출에 타격이 커 운영이 어려웠기 때문. 당시 계속해서 1개월에 800여 만 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그 이유는 대형 유통업계에서 시내를 돌며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무료 운송하는 바람에 대중교통인 자신의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씨는 시민들의 발이나 다름없는 버스운행을 중단하면 안 된다는 사명감에 적자운영을 감수하면서 10여년간 버틴 끝에 이제 겨우 현상 유지를 하고 있다. 지금도 적자운영 당시 회사를 살리겠다는 의지 하나로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운전기사들의 배려하는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자신들의 월급 일부를 반환하면서 회사를 살리는데 써 달라고 했던 직원들의 마음가짐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 회사의 구성원들을 보면 금 새 정씨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이 실감난다. 대개 이 직종의 버스운전기사들은 이직 율이 높아 2~3년 근무하고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기는 사례가 많은데 이곳은 예외다. 전체직원 중 5~10년 이상 근속자가 50% 이상이나 된다. 한마디로 애사심을 가진 직원들로 똘똘 뭉쳐 있다. 정 사장의 회사 운영 방법이 서로를 위하는 가족 같은 직장 분위기가 직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회사운영으로 큰 이익은 없지만 그의 마음은 늘 즐겁기만 하다. 자신의 회사 버스를 타고 나들이를 하는 지역 주민들을 볼 때마다 뿌듯한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정씨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터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하니 50여년이 된 셈이다. 요즘은 분당에 있는 요한 성당에 다니고 있다. 늘 남을 돕는 일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있다. 신앙심이 강한 그는 매년 성지순례 차 터키를 비롯 프랑스 이태리 등 유럽 여러 나라를 방문하는 성지 순례 단 모임에 빠지지 않는다. 성당을 다닌 인연으로 성남지역노숙자쉼터, 가톨릭 계통 장학사업 에도 관심을 갖고 후원하고 있다. 그리고 성남 수성경찰서 보안협력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 하면서 어려운 형편의 탈북 청소년들도 후원하고 있다.

스스로 조선시대의 개국 공신인 삼봉 정도전 선생의 19대 손이라고 밝히는 그는 자신의 선조들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삼봉 정도전 선생은 백성들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민본정치를 아는 현명한 정치인 이지요. 시대는 달라도 지금 우리나라에도 정도전 같은 앞을 내다보는 현명한 정치인들이 많이 나와야 나라가 부강합니다.” 정씨는 정도전 선생에 대한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사업에 바쁜 와중에도 그의 취미인 사진에 대한 열정만큼은 남다르다. 한국사진가협회 회원으로 프로급 사진작가인 그는 이미 충무로 사진박물관에서 개인전 4회 갖고, 20여회의 그룹전을 가진 경력이 있다. 그의 사진작품 소재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 벽, , 연꽃 등으로 우수한 작품이 많다. 최근에 가천대학에서 벽을 소재로 만든 작품인 흔적4점을 전시해 각광을 받았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자랑할 만한 작품으로 가히 대표작 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은 제 25회 대한민국사진전에 출품 입선한 광복 50’. 경찰 군악대의 악기에 절묘하게 반사돼 비친 시청 앞 태극기를 소재로 한 것이다.

그는 지난해 6월말에도 56일 일정으로 몽고를 다녀왔다.

드넓은 초원에서 자유로이 뛰노는 몽고 야생마 1,000필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은 일품이다. 그의 사진기에 투영된 작품이 어떤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앞으로 그의 꿈은 사업 확장으로 수익을 증대시켜 직원들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이다. 그리고 작품 활동을 계속하며 새로운 소재를 찾는 것이다.